알콜중독 참전용사의 자식으로 사는 법 17: 가난한 가정폭력 집안의 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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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아버지는 자신과 큰아버지의 관계처럼 내가 장남으로서 무게를 가지고 동생을 대하길 바랐다. 그래서 나와 동생이 장난을 치고 크게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면 불같이 화를 냈다. 하지만, 내가 별것도 아닌 이유(예를 들어, 동생이 편식한다든지, 티비 드라마에 나온 인물의 욕을 따라 하는 것)로 동생을 혼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아버지의 이런 스탠스는, 아버지에 대한 나의 반감을 더욱 키웠다. 웃기지 않은가? 정상적인 가정이라면 화목하게 웃으며 어울리는 형제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반대로 동생을 혼내고 울리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형을 말렸을 텐데 말이다. 처음에는 동생을 지도한다는 착각 속에 어린 동생을 많이 혼내기도 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제대로 된 형의 노릇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마음은 불편했다. 타인을 꾸짖는 데서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건 조금 문제가 있는 상태일 테니까.

애초에 나와 동생은 나이 차이가 크게 났기 때문에, 나는 동생이 너무나 귀여웠다. 누군가는 동생이 태어나면 부모의 사랑을 빼앗긴다는 느낌에 동생을 미워하기도 한다지만, 국민학교 때까지 반쯤 외동으로 큰 나로서는 갓 태어나 꼬물거리며 커가는 동생이 예뻤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부모님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아본 적이 없다. 집 안에서도 항상 불안하고 두렵고 외로웠다. 그때 동생이라는 존재는 나에게 큰 치유가 되었다. 성격이 무뚝뚝해 크게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만큼은 그랬다(물론, 동생은 나이 차 많이 나는 형이 무섭고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는 당신의 트라우마를 형제 관계로 치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날 문득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내 마음의 상처를 동생과의 관계에서 치유하고 있다는 걸.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생존 방식을 따라가고 있었다. 어떨때는 그게두렵다.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보고 자란 것만으로 그 행동들이 자연스레 내 것이 될 때 말이다.

디아블로 잡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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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영화<진짜로 일어날지도 몰라 기적>

“우리 오늘은 성당에 가지 말까?”

내 질문에 동생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어머니가 억지로 미용실에 데려가 볶은 브로콜리 같은 동생의 갈색 파마머리가 바람에 흔들린다.

“그럼 우리 어디 가노?”

어렵게만 생각되던 형이 갑자기 예상치 못한 제안을 하니 동생은 매우 혼란스러운 듯했다.

아이들 주머니 사정을 고려할 때, 갈 곳이라고 해 봤자 몇 군데 되지 않는다. 피씨방, 오락실, 만화방 정도다.

“피시방 갈까?”

집에 컴퓨터가 없던 시절. 장난감 몇 개도 없던 동생에게 피시방은 에버랜드와 동급으로 가슴 설레는 단어였다.

“응 좋다!”

우리는 성당으로 진입하는 길에서 옆 골목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날을 계기로, 어쩌다 보니 일요일만 되면 우리는 피시방으로 향하는 일탈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에는 피시방 수요가 높아 1시간에 1,500원, 심하게는 2,000원을 받는 곳도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궁핍한 나와 동생은 800원을 받는 피시방을 가기 위해 집에서 한 시간 떨어진 곳까지 걸어 다녀야 했다. 들이는 노력에 비해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짧았지만, 나와 동생 모두 집에 있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편했다.

우리가 즐겨하던 게임은 그때 한창 유행했던 디아블로2. 악마들을 혼내고, 서로 주운 아이템을 나눠 갖고, 어떻게 어려운 보스를 때려잡을지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는것이 우리 형제에겐 지금까지도 꺼내는 평생의 추억이 되었다. 돌아오는 길에는 문방구 옆 분식집에서 파는 떡볶이를 동생에게 사주었다. 커서는 입에도 대지 않는 떡볶이를 그때의 동생은 왜 그리도 좋아했는지, 헤헤 웃으면서 떡볶이를 먹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중략

기사/이미지 원본 출처 : 딴지일보 RSS F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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